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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초반 만주지역에서의 전염병 확산문제

History

by HanT 2022. 1. 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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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사태가 장기화되고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재의 세태를 고려하여 두 번째 글의 주제를 선택해보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발생한 사스, 메르스나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의 문제는 전 세계인들에게 전염병의 공포를 각인시켜주었다.

이러한 전염병의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미 14세기에는 유럽의 흑사병, 15세기 말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천연두, 17세기 중국 북부지역의 페스트 등 여러 전염병들이 세계 각지에서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현재 중국의 동북 3성 (요령, 흑룡강, 길림) 지방에 해당하는 만주지역에서도 1910년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만주지역에는 기차를 통해 많은 모피를 얻기 위해 유입된 많은 사냥꾼들이 있었고, 이 모피들의 대표적 수요지는 유럽의 런던 (London)라이프치히 (Leipzig)였다. 

1910년 10월, 모피를 얻기 위해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Marmot까지 포획하였던 사냥꾼들을 시작으로 페폐스트의 감염이 시작되었고, 만주지역에 부설된 철도선을 따라서 전염병은 확산되었다.

 

쥐의 벼룩에 의해서 감염 및 전파가 이뤄지는 림프절 페스트 (Bubonic plague)에 비해 폐 페스트 (Pneumonic plague)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 및 전파가 이뤄지면서 높은 전염성을 보여주며, 치사율 또한 높았다.

전염병에 대한 예방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불가했기에 격리와 차단만이 유일한 대책이었으나 만주지역은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의 세력이 관할권을 나눠갖고 있었기에 대책 수립에 있어서 난항이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각각 한국과 시베리아 지역으로의 전염병 확산 방지 혹은 만주 지역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역의 local interests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와 대응하여 중국과 미국은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지역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아래의 지도를 보면, 창춘의 남쪽은 일본의 관동군과 남만주철도주식회사 (South Manchuria Railway, SMR)의 관할이었으며, 그 북쪽은 러시아의 동철(Chinese Eastern Railway, CER)의 영역이었다. 

 

1910년 10월 13일에 첫 발병이 시작되고나서 27일에는 하얼빈, 12월 31일에는 창춘, 1911년 1월 12일에는 북경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만주지역에서 일하기 위하여 거주하던 하층 노동자들 (Coolies)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귀성하려던 시기였기에 이들에 의해서 만주에서 북중국으로의 전염병 확산이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열차 노선의 폐쇄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귀성이 거부되자 이들은 철도가 아닌 도보로 귀향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는 도시지역을 넘어서 교외로 전염병 확산의 범위를 넓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폐페스트라는 전염병에 대한 무지와 방역조치에 대한 무지, 제국주의 세력들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해관계 등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서 폐페스트는 만주와 북중국 지역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전염병 발생 두 달 전에 한국을 병합하였던 일본은 전염병이 확산하자 즉시 만주지역과 한국 사이의 두만강 유역 국경을 폐쇄 조치하였다. )

 

기차로 이동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을 검역하는 장면

 

청나라는 자국의 힘만으로는 대처가 어려웠기에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1911년 4월 3일부터 29일까지 봉천(현재의 선양, 지도상에는 Shenyang)에 각국의 의사들이 모여 폐 페스트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는 중국 역사상 중국의 정부가 후원해주는 첫번째 international medical conference였다.

 

이 회의에서 폐페스트의 발병 원인, 전염경로, 예방책, 방역 대책 등, 전반적인 사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회의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었던 미국의 대표단은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 내부에서 전염병에 대한 대응책에 기반하여 자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를 견제할 수 있었고, 공중보건과 관련된 중국 정부 내의 조직 설립에 관해서도 중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며 중국 정부의 권한을 지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1910년 만주지역에서 발생한 폐페스트는 의학적인 측면에서 전염병에 대한 연구를 진일보시키고, 방역에 대한 국제적 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수 있지만, 만주지역에서 이뤄지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이 전염병을 둘러싼 대응의 영역에서까지도 관찰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한 현재 장기화된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는 WHO의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WHO라는 국제기구 내에서 영향력을 둘러싼 각 국가들(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 당시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도권 다툼에 비춰봤을 때 어떠한 시사점을 던져주는지도 생각해볼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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